신차구매팁

렉서스의 역사는 다시 쓰여질까?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 자동차에서도 대입할 수 있는 사례가 일본제조사의 고급차 브랜드 런칭이다. 누구나 1989년 미국에 런칭한 토요타의 렉서스 브랜드를 떠올릴 것이다. 렉서스의 등장은 품질 좋고 저렴했던 일본차가 고급브랜드를 런칭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1986 ACURA LEGEND

하지만 순서로 따진다면 이는 틀렸다. 일본차 최초로 럭셔리디비전을 북미에 선보인 주인공은 혼다의 어큐라다. 렉서스보다 3년 빠른 1986년의 일. 닛산의 인피니티 또한 렉서스와 같은 해에 탄생했으니 렉서스를 일본차 최초의 해외진출 럭셔리브랜드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토요타가 워낙 오랜기간 렉서스를 준비하는 바람에 그 사이 정보가 새어나가 경쟁사에서 더 빨리 비슷한 프로젝트를 런칭할 수 있었다는 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도시전설 수준의 이야기다.



그만큼 오랜기간 공 들여 토요타가 사활을 걸고 준비한 브랜드가 렉서스였다. 자동차 역사상 가장 치밀하고 논리적인 프로젝트였다는 평도 있다. 토요타는 이를 위해 수 많은 직원들을 북미의 상류층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보냈다. 직원들은 실제로 그곳에 고급주택을 마련하고 미국과 유럽의 고급차를 타며 상류층이 즐겨 찾는 식당과 쇼핑가를 찾았다. 그들이 그곳의 상류층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비용이 지원되었다. 업무를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한 직원들이 보통(?)의 삶으로 돌아와 힘들어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그렇게 토요타의 직원들은 북미 상류층 삶 속에서 새로운 고급차 브랜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사람들은 연비가 떨어지고 잔고장이 잦았던 캐딜락과 링컨 등에 실증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럭셔리브랜드지만 한편으로는 낡은 이미지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특히 새로 상류층으로 진입하는 세대일수록 전통적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저항감이 있었다.



LEXUS 1st LS

이를 통해 렉서스는 일본차의 장점인 높은 내구성을 유지하고 유럽 럭셔리브랜드 수준의 안전성과 성능을 더하면서, 당시 자동차제조사 중 최고 수준이었던 조립정밀도와 내장품질, 정숙성과 첨단사양 등을 통해 기존의 고리따분하고 낡은 럭셔리브랜드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여기에 시장조사를 통해 알게 된 소비자층을 향한 차별화된 AS와 마케팅 활동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활기찬 럭셔리브랜드임을 어필해 나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1세대 LS.


LEXUS 1st LS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토요타 자신도 렉서스가 이 정도로 빠르게 자리잡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일본차에 대한 선입견이 강했다. 일본차는 품질은 좋지만 값싼 대중차 이미지가 매우 강했고, 렉서스보다 먼저 선보인 혼다의 럭셔리브랜드 아큐라조차도 시장에서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스로의 예상치와, 암울한 시장상황을 이겨내고 렉서스 브랜드 최초의 모델 LS는 데뷔 첫 해에만 11,600대가 팔려나갔다. 처음 선보인 럭셔리브랜드의 가장 비싼 기함모델로는 매우 성공적인 판매대수다.



LEXUS 2nd ES

이후 렉서스는 차종을 늘려가며 북미에서 빠르게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특히 캠리의 전륜구동 플랫폼으로 만든 ES시리즈나 도심형 럭셔리 SUV를 표방한 RX는 기존 럭셔리브랜드에 없던 실용적 접근으로 렉서스만의 시장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패스트팔로워에서 시장을 리드하는 제조사로 성장해나간 것이다.


LEXUS 4th LS

렉서스가 시장을 리드한 사례는 또 있다. 바로 하이브리드다. 세계최강의 하이브리드기술을 보유한 토요타는 이 기술을 렉서스에서도 사용하기 원했다. 전통적으로 럭셔리카 시장은 유지비에 덜 민감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요타 브랜드에서 기름값 절감 역할이었던 하이브리드는 렉서스에서 다르게 접근됐다. 유지비가 아닌 지구환경 보호이미지로 접근한 것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처음으로 적용됐던 4세대 LS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돈이 많을 뿐 아니라 환경보호에도 앞장서는 착한 부유층이미지가 더해졌다. 실제로 토요타/렉서스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연료절감뿐 아니라 오염물질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연료비 절감을 위해 하이브리드를 구매했던 일반 대중에게 환경보호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상류층에게는 연료비 절감보다 환경보호성능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주요 어필포인트가 된 것이다.


화려하고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경쟁사들

하지만 렉서스도 브랜드런칭 20년이 넘어가면서 어떤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스스로 내세웠던 정숙함과 내구성 등의 차별포인트는 오히려 렉서스에 노후한 이미지를 더해나갔다. 경쟁사들은 더 튀는 디자인과 고성능으로 젊은 역동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무난한 생김새와 조용함, 하이브리드 만으로는 그들을 상대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북미시장용 브랜드라고 조롱받는데, 한국시장에서도 존재감을 잃기 시작했다. 활기차고 젊은 독일 브랜드를 놔두고 렉서스를 살 이유가 점점 더 약해져갔던 것이다. 


LEXUS LC500

렉서스는 이 난관을 정면돌파하기로 정했다. 그들의 상징이었던 고요하고 정돈된 이미지를 과감히 버리기로 한 것이다. 스핀들그릴은 그 변화의 시작을 나타냈다. 심플했던 그들의 디자인에는 과도하리만큼 날카로움과 예리함이 더해졌고, 고성능버전인 ‘R’은 라인업마다 추가되었다. 이 무렵 렉서스브랜드를 진두지휘하던 임원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LEXUS LC500h

고속도로에서 뒤따라오는 렉서스가 사이드미러에 존재감 있게 비춰지길 바랐다
기존의 사이드미러 속 렉서스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렉서스의 스핀들그릴과 새로운 디자인은 너무 큰 변화 폭에 모두를 놀라게 했다. 과도한 모양에 대한 비판의 의견도 많았다. 여전히 유럽 시장에서는 이 디자인을 받아들이기 힘든 분위기다. 그러나 분위기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LC와 같은 수려한 차들이 나오면서 소비자들도 렉서스의 새로운 이미지에 적응하고 있는 듯 하다. 국내에서는 더욱 그렇다.


LEXUS ES300h

얼마 전 렉서스 ES의 하이브리드모델 ES300h가 국내 수입차 최고 판매대수를 기록했다. 전통적으로 벤츠와 BMW가 왕좌를 나누어먹는 시장에서 ES의 선전은 신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3브랜드인 렉서스의, 변방 동력계통 취급 받던 하이브리드모델이 그만큼 팔린 것이다. 상위권에 렉서스가 보이지 않고, 아무도 하이브리드를 거들떠보지 않았던 꽤 오래 전부터 렉서스는 우리나라에 판매하는 모델을 하이브리드로 채워나갔다. 그 결실을 이제 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왕좌는 다시 독일 럭셔리브랜드에게 빼앗겼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렉서스 하이브리드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LEXUS 5th LS

어쩌면 그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결과가 있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북미에서 렉서스 브랜드를 런칭했던 그 때처럼 철저한 시장조사와 논리적 접근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 화려한 디자인과 짜릿한 고성능라인업까지 더해졌으니 그들의 역사는 점차 다시 쓰여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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