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상식

모터쇼의 쇠퇴로 엿보는 자동차의 미래

현재 옆나라 일본에서 동경모터쇼가 열리고 있다. 한때 세계 3대모터쇼라고까지 불렸던 동경모터쇼지만 올해 행사에서는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제조사의 차를 아예 볼 수 없다. 수 많은 브랜드들의 불참 속에 치러지는 동경모터쇼를 보며 자동차산업의 현황을 되돌아보게 된다.


출처: google

자동차를 좋아한다면 어릴 적 모터쇼에서 느꼈던 두근거림에 대한 기억이 있을 법 하다. 길가에서 보기 힘든 비싼 차, 희귀한 차들이 가득 찬 전시장은 그야말로 꿈 같은 현장이었다.


출처: VW usa

자동차 제조사들에게도 모터쇼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자동차 산업계에 있어서 대외행사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핵심적인 이벤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F1이나 다카르 랠리 등에도 자원을 투입했지만 그건 모터스포츠에 힘주었던 몇몇 브랜드의 이야기다. 반면 모터쇼는 자동차를 판매하는 모든 회사들에게 최우선순위의 행사였다.


출처: TMS

단순히 축제와 같은 이벤트여서뿐만이 아니다. 모터쇼는 제조사에게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고객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확실한 곳이었고, 앞으로 나올 차에 대한 시장조사 또한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콘셉트카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회사의 방향성을 미리 보여주는 모델이었다. 모터쇼에서 반응이 좋으면 실제 프로젝트로 진화하고, 반응이 나쁘면 슬그머니 접고는 했다.


출처: google

모터쇼의 메인 부스에 멋진 자동차들이 있었다면, 변두리 부스에서는 수많은 부품회사들이 바이어와 만났다. 부품 없는 자동차 없듯 부품회사 없는 자동차회사도 없다. 모터쇼는 관련 회사와 완성차 제조사가 만나는 또 다른 창구였다. 여기서 이뤄지는 수 많은 거래를 통해 모터쇼는 큰 금액이 오가는 비즈니스현장으로 존중 받았다.


1950년대 모터쇼 / 출처: google

그러다 보니 자동차회사를 갖춘 나라들은 너도나도 모터쇼를 만들었다. 미국, 독일, 일본, 등등이 차례차례 자동차 활황기인 모터리제이션을 맞이하며 동시에 자동차산업과 모터쇼의 규모를 키워나갔다. 우리나라 또한 1995년 서울모터쇼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국제모터쇼를 시작하게 된다. 2년마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됐던 서울모터쇼는 참가브랜드와 관람객이 늘어나면서 규모가 더 큰 일산 킨텍스로 무대를 옮기게 되었다. 한 때 잠시나마 세계 몇 대 모터쇼라는 수식어가 오르내릴 만큼 서울모터쇼 또한 큰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출처: mercedes-benz

그러나 이런 흐름이 언젠가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자동차 행사의 꽃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모터쇼의 위세가 축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신호탄은 콘셉트카 감소다. 브랜드마다 몇 개씩의 콘셉트카가 화려한 조명과 음악 속에 등장했던 과거와 달리 그 수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가는 콘셉트카 개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자동차회사들이 모터쇼에 투입하는 비용을 아꼈다는 뜻이다. 투자대비 효과가 예전같이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콘셉트카 한 대 없이 시판 모델로만 전시장을 채우는 회사들이 흔해졌다. 그나마 갖춰놓은 콘셉트카들도 다른 모터쇼의 재탕이거나 행사를 위해 만든 단순 쇼카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예전처럼 심도 있는 연구 끝에 미래 비전을 담은 의미 깊은 콘셉트카가 아니라는 뜻이다.


출처: 기아자동차

몇 년 전부터는 모터쇼 참가업체 자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자국에서 열리는 모터쇼 외에는 되도록 참가하지 않는 브랜드가 늘어난 것이다. 그 결과 전세계 모든 모터쇼의 메이저 자동차 브랜드 참가수가 해마다 줄고 있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전 브랜드가 불참한 2017 동경모터쇼 / 출처: TMS

현재 진행 중인 2017 동경모터쇼의 경우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이탈리아의 모든 브랜드가 불참했다. 페라리, 람보르기니와 같은 슈퍼카와 벤틀리 롤스로이스 같은 럭셔리카는 물론이고 GM, 쉐보레, 크라이슬러, 지프, 재규어, 랜드로버처럼 길거리에 흔한 제조사들마저 모두 동경모터쇼에 등을 돌렸다는 소리다.


2017 서울모터쇼 / 출처: 서울모터쇼

올해 초 열렸던 2017 서울모터쇼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탈리아와 영국의 슈퍼카, 럭셔리카는커녕 한동안 인증문제를 겪었던 아우디와 폭스바겐마저 불참했으며 2년 전 서울모터쇼에 비해 전시차량이 50대나 줄었다.


2017 디트로이트 오토쇼 출처: google

이는 비단 일본과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이탈리아와 영국의 슈퍼카/럭셔리카 제조사들은 디트로이트 모터쇼에도 불참했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핵심지역에서 열리는 미국에서 가장 큰 모터쇼조차 참가브랜드 수 감소라는 현실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모터쇼의 본고장인 유럽도 마찬가지다. 비록 중국의 모터쇼는 난립하는 현지 회사들과 시장규모 때문에 여전히 활기를 띄지만 모터쇼 쇠퇴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출처: BMW facebook

자동차회사들의 모터쇼 패싱은 모터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온라인 생태계의 발달로 인해 고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많아졌다. 자동차회사들이 내세우고 싶은 것을 보여줄 만한 공간과 채널이 아주 풍부해졌다는 뜻이다. 비싼 비용을 들여 컨셉트카를 제작해 모터쇼 부스에 올리지 않고도, 3D 이미지를 만들어 SNS에 뿌리면 전 세계 수 억 명의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노출된다. 물리적인 모터쇼에 자원을 투입하지 않아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수 많은 방법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모터쇼 패싱의 원일 중 하나일 뿐이다.


출처: google

자동차 행사인 모터쇼에 자동차회사들이 등 돌리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자동차가 자동차의 우물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점차 물리적 기계장치에서 전자장비로 진화되어가는 동시에 플랫폼화 되어가고 있다. 최근 자동차분야의 가장 핫이슈인 전기차와 인공지능, 그리고 이로 인한 자율주행기술 또한 기존 자동차산업보다는 전자산업에 가깝다. 자동차는 이를 통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엔진개발 소식보다는 주행거리가 몇KM 늘어난 배터리를 개발했다는 소식이 더 많이 들리고, 새로운 변속기가 나왔다는 뉴스보다 자율주행기술에 대한 뉴스가 더 익숙한 요즘이다. 또한 자동차 자체의 성능이나 완성도보다, 그 차로 인한 새로운 생태계와 사업 가능성에 투자자들이 더 반응한다. 그만큼 자동차가 전자화, 인공지능화, 그리고 플랫폼화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CES The 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 / 출처: CES

이로 인해 기존 모터쇼가 맡았던 신기술 발표의 장 또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게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 CES. CES는 원래 삼성, LG 등 전자제품 회사가 주인공이었다. CES에서 몇 인치 TV와 어떤 스마트폰이 최초로 공개되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그런데 최근 CES 소식에는 전자회사보다 자동차회사가 더 많이 등장한다. 벤츠나 BMW, 현대자동차의 어떤 차가 CES에 공개됐다는 뉴스다.


출처: BMW

심지어 올해 CES 이후에 열렸던 디트로이트 오토쇼는 ‘CES에 공개된 자동차기술이 재탕되는 곳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실제로도 자동차회사들의 모터쇼와 CES 참가내역을 비교하면 CES의 전시내용이 더 재미날 뿐 아니라 보도자료까지 더 많이 배포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자동차회사들이 모터쇼보다 전자제품 박람회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뉴욕 코믹 콘에 전시된 좀비 싼타페 / 출처: 현대자동차 보도자료

사실 자동차회사들의 외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과 미국의 만화와 게임 쇼 등에도 점차 자동차회사들의 참여율이 높아지고 있다. 자사의 자동차를 게임 케릭터화 하거나 게임 속에 등장하는 자사 모델을 전시하는 식이다.


그란투리스모 출시행사장 / 출처: polyphony

폴리포니의 그란투리스모 새 시리즈 발표행사는 점점더 자동차회사의 홍보 각축전이 되어가는 중이다. 전세계 내로라하는 자동차회사들이 그란투리스모 행사에 자사의 차를 더 많이 전시하고 서로 더 많이 후원하기 위해 경쟁을 펼칠 정도다. 여러모로 기존 모터쇼를 대하는 태도와는 다르다.


소유의 자동차와 공유의 자동차 / 편집: 오토랩스

자동차가 전자화 인공지능화 되면서, 우리 생활에서 점차 독립적 존재 아닌 복합적 현상의 일부가 되어간다. 한때 부의 상징이었던, 그래서 소유의 대상이었던 자동차의 역할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동차는 수단이자 플랫폼이 되어갈 것이다. 자동차 자체보다, 자동차를 타고 어디에 가고 무엇에 쓰고 어떻게 이동하는지가 더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쉐어링카 같은 공유 서비스가 등장했고, 자율주행 같은 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며 자동차회사들이 모터쇼 자체보다 자동차와 관련 있는 주변행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수십 년 전 전세계적으로 마이카 붐을 일으켰던 모터리제이션을 통해 목적이자 꿈이 된 자동차. 지금은 플랫폼화 되어갈 새로운 자동차와 그 문화를 상상해야 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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